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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전신마취 기구 없이 제왕절개 수술… '맨손' 한국 의료진이 아이티를 살렸다(2010년 2월 3일자, 박관태 회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6-28 15:25
조회
1271

 

전신마취 기구 없이 제왕절개 수술… '맨손한국 의료진이 아이티를 살렸다
 

고려대·조선일보 의료봉사단이 전하는 '아이티에서의 10일'
· 다국적팀 만들어 동물용 마취약품으로 대체
의료용 라이트만 쓴채 수술 40분만에 아기 울음 터뜨려

'죽음의 땅' 아이티에서 새 생명이 태어났다. 국내 민간의료기관 최초로 아이티 지진 피해 현장에 급파돼 열흘 간 의료봉사 활동을 벌이고 지난달 31일 귀국한 고려대의료원·조선일보 봉사단은 제왕절개 수술을 못 받아 사경을 헤매는 산모와 태아를 극적으로 살려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달 24일 새벽, 고대의료원 봉사단에 긴급 구원 요청이 들어왔다. 32세 임신부가 출산 과정에서 생명이 위태로워 응급 제왕절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여성은 무너진 건물 틈을 만삭의 몸을 이끌고 간신히 빠져나왔고, 그 며칠 뒤 산통이 왔다.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수술을 받지 않으면 분만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현지 의료진이 수도 포르토프랭스 외국 진료팀을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제왕절개를 집도할 산부인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 한국·미국·네덜란드·프랑스 등 16개 진료팀이 묵고 있던 미국계 크리스천 학교에도 산부인과 의사는 없었다. 다들 수술 경험이 없기에 선뜻 나서지 않았다. 현지 병원 관계자는 고려대 팀에 "이제 시간이 없다. 당신들에게 제안하는 게 마지막 구원 요청"이라고 했다.

 

▲ 절망 속에서도 생명은 피어났다. 지난달 24일, 아이티 지진피해 현장에서 고대의료원 외과 박관태 교수가 제왕절개 수술로 태어난 아기를 안고 있다./고려대의료원 제공
급기야 외과 박관태 교수가 수술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러자 독일 마취과 의사, 미국 가정의학과 의사, 소아과 의사, 한국 간호사가 도와주겠다며 따라나섰다. 순식간에 다국적 의료팀이 구성된 것이다. 마침 박 교수의 부인은 산부인과 전문의였다. 그는 산모가 있는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걸어 부인에게 제왕절개 수술 순서를 물었다. 박 교수는 "그렇게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수술 법을 순서대로 외우기는 처음"이라며 "머릿속으로 계속 수술 과정을 시뮬레이션했다"고 말했다.

동틀 무렵, 의료진이 현지 병원에 도착했으나, 수술 방에는 전신마취 기구는 물론 전기도 없었다. 독일 마취과 의사가 일단 동물 마취에 쓰이는 약품을 이용해 산모를 재웠다. 그리고는 박 교수가 머리에 두르는 의료용 라이트(light)만 쓰고 제왕절개에 들어갔다.

40분이 경과할 쯤, 마침내 딸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박 교수가 엉덩이를 때리는 순간, 아기는 울음을 터뜨렸고, 의료진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 소식이 국제 의료 지원 캠프로 퍼져 나가면서 구호 활동이 더욱 힘을 받았다고 봉사단은 전했다.

하지만 현지 의료 환경은 열악하기 이를 데 없다. 김승주(외과 교수) 단장은 "2005년 파키스탄 지진 때도 다녀왔지만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처참한 모습"이라며 "대규모 의료와 방역 지원이 없다면 전염병, 영양 결핍, 면역력 저하 등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추가로 생길 상황"이라고 전했다.
 
봉사단은 우리나라도 국가 차원의 재난 구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박관태 교수는 "선진국 진료팀은 정부 지원으로 아이티에 아예 3~4개월 머물 계획을 하고 들어온다"며 "이들은 며칠 간격으로 의료진을 계속 교대해 주고, 응급 수술→방역 활동→질병과 후유증 관리 등 재난 발생 경과 시기별로 의료지원 내용을 달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현재 긴급 재난 구호 의료팀을 전문적으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를 중심으로 대규모 캠프를 차렸다. 이를 통해 기관별로 파견된 진료팀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체계를 갖췄다. 반면 한국은 여러 민간 의료단체가 아이티로 들어가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강행군을 펼쳤지만 역부족이었다고 봉사단은 전했다. 진료 활동을 할 장소를 구하기 급급했고, 개인 차원에서 의료용품을 가져오다 보니 전신 마취 수술은 엄두도 못냈다. 선진국이 정부 지원으로 수술 병원을 운영한다면, 한국은 투약(投藥) 위주 '천막 진료소'를 차린 격이다. 그러다 보니 의료지원의 연속성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박 교수는 "민간 차원의 각개전투식 구호 활동은 단기(短期)에 그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좀 더 조직적인 구호 활동이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2/03/20100203001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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