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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사진작가 신미식 씨, "사진의 생명은 교감…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 누르지 말라"(신미식 회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8-12 16:16
조회
1267


  • [파워 인터뷰]

     

    사진작가 신미식 씨, "사진의 생명은 교감…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 누르지 말라"

     

    입력: 2011-08-05 17:46 / 수정: 2011-08-06 04:23
     

    서른에 입문, 암실서 남몰래 연습…작품 오랫동안 보면서 안목 키워
    전 세계 누볐지만 아프리카에 매료…그곳은 동정 아닌 동경의 대상
    대상을 찍는 건 카메라지만 그것을 허락하는 건 내 가슴이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카메라를 처음 장만한 것은 서른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FM2에 50㎜ 단렌즈 하나였죠.그때만 해도 사진을 배울 곳이 많지 않아 잡지를 보거나 전시장을 찾아다니며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잡지사에 근무했는데 밤마다 암실에 몰래 남아 새벽 4시까지 인화 작업을 독학으로 배웠죠."

    여행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작가 신미식 씨(49).그는 모든 것에 늦깎이였다. 대학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으니 딱히 연관 없는 분야는 아니지만 뒤늦게 렌즈의 마력에 빠졌다. 서른 중반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으로 떠났다. 수많은 사진을 찍고 돌아와서는 몇개월 일하고 또 떠났다. 그렇게 해서 첫 책 《머문 자리》를 2001년에 내고 본격적인 여행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에티오피아를 비롯해 세계 80여개국을 다녔지만 전시는 주로 아프리카 사진으로 했다. 특히 인도양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 사진이 많았다. 왜 하필 그곳에 꽂혔을까.

    "2005년 마다가스카르에 처음 갔어요. 팸 투어에 동행했는데 공항에서 내려 20여분쯤 갔을까.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느낌이 왔죠.평소에는 메모를 잘 하지 않지만 그때 멈춰서서 메모를 했어요. 45년간 한국에서 살았는데 앞으로 살아야 할 곳이 있다면 여기구나….이후 여섯 번이나 다시 가게 됐죠.그땐 몰랐지만 3년 뒤에야 알았습니다. 내가 아프리카 전문 사진작가구나. 그것도 마다가스카르를 트레이드 마크로 하는 작가. "

    그가 본 아프리카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프리카를 아름답게 찍는다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사실은 아름다운 아프리카를 찍는 겁니다. 특히 아이들이 가장 아름다워요. 아프리카 아이들을 찍을 때 전 10년째 신용불량자로 지내고 있던 중이었어요. 5년간 주민등록이 말소되기도 했죠.13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는데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더 어려워져 최악의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들을 보면서 '너희들이 더 낫다,행복하다,부럽다'고 진심으로 생각했죠.실제로 제 사진 속의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입니다. "

    그 무렵 그는 전시회에 쓸 액자를 살 돈이 없어 갖고 있던 카메라까지 팔아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작품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고 1년 이상 카메라 없이 지내야 했다.

    "그때 더 성숙했던 것 같아요. 카메라가 없으니 찍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했죠.쌀독이 비면 배가 더 고픈 것처럼요. 그 절실함이 저를 키웠습니다. 제 사정을 알고 한 기업인이 카메라를 사줬는데 그 다음 전시회 할 때 또 팔아야 했어요. "

    워낙 궁핍했던 그는 신장을 팔겠다고 두 번이나 나섰다. 그러나 어머니 얼굴이 떠올라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밑바닥 세상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는 아프리카에 모든 것을 주고 싶어한다. 올해 4월에는 마다가스카르에 가서 도서관을 세우고 우물도 파고 운동장까지 만들어줬다.

    "이건 '도움'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함께 사는 공존여행의 한 방법이죠.우간다와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에서는 신발만 있어도 사망률이 25%는 줄어들어요. 발에 상처가 나면 파상풍 같은 병으로 죽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들의 발을 많이 찍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런 얘길 주변에 했더니 모두들 돕겠다고 해서 벌써 신발 1000켤레 이상을 확보했습니다. 올가을에 가서 아이들에게 나눠줄 겁니다. "

    그래서 그는 "꿈은 간직하기만 하는 것보다 나눠야 이뤄진다"고 말한다.

    "누구에게나 꿈이 뭐냐고 자주 물어봐야 합니다. 뭘하고 싶은지 알아야 도와줄 수 있잖아요. 저도 그래서 후원자들을 만났고요. 전 어릴 때 꿈이 9급 공무원이었어요. 끼니 걱정 없이 출퇴근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제가 있는 이곳 마다가스카르 카페를 연 것도 마찬가집니다. 갤러리 카페 카페를 여는 게 꿈이라고 늘 말했더니 어느 날 한 분이 장소를 제공할 테니 직접 운영해보라고 해서 시작했는데 지금 이렇게 커졌어요. "

    3년 전 서울 효창운동장 건너편에 문을 연 '마다가스카르 카페'에는 마다가스카르의 상징인 바오바브나무와 소년소녀들의 사진,낡은 카메라,아프리카 관련 서적과 사진집,에티오피아에서 온 자연산 예가체프 커피 향이 가득했다.

    그는 이제 여행사진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영역을 더 넓히고 싶다고 했다. 당국의 승인을 받아 국내 최초로 NLL 사진을 찍고 전시회도 열었다.

    최근엔 해병대에 입대한 현빈 등의 사진을 찍어 《나는 해병이다》(김환기 글,신미식 · 손민석 사진,플래닛미디어 펴냄)도 출간했다. 현빈을 비롯해 여덟 명의 해병대 이병을 인터뷰해 가입소 기간부터 6주간의 정식 훈련과 자대 배치 이후의 생활까지 생생한 사진과 글로 담은 것.그는 "영화배우 현빈이 아닌 해병대원 김태평의 모습을 포착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남은 꿈은 65세까지 배낭여행을 다니는 것과 멋진 갤러리 펜션을 짓고 35권의 책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21권의 여행포토에세이를 펴냈다. 2년 전엔 주택청약저축통장도 처음으로 만들었다. 마흔일곱 살에 마련한 또 다른 늦깎이 꿈이었다.

    이처럼 굴곡진 삶에서도 그가 가장 빛나는 가치로 생각하는 사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는 "감동이 오기 전에 셔터를 누르지 말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사진을 찍는 것은 카메라지만 그것을 허락한 것은 내 가슴이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 문구는 그의 명함 뒷면에 새겨져 있다. 두 번째 책 제목인 《떠나지 않으면 만남도 없다》는 말 역시 그의 사진 철학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그가 지금 쓰는 카메라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캐논 EOS-1Ds Mark Ⅲ'였다. 렌즈는 캐논 28-300㎜.들어 봤더니 돌덩이처럼 무거웠다.

    만난 사람 = 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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