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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매경이 만난 사람> 이태석상 받은 의사 이재훈씨 (이재훈 회원)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12-07 16:43
조회
1357

 

마다가스카르섬서 6년간 의료봉사
"中1학년 때부터 의료선교 꿈꿔, 정글누비는 `부시맨 닥터` 됐죠"


2011.12.02 17:06:56

 "생전에 이태석 신부를 만난 적은 없지만 영화 `울지마 톤즈`로 잘 알게 됐어요. 그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고 많이 공감했지요. 이태석 신부가 한 일에 비해 저는 내세울 게 없는데 과분하게 평가를 받은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11월 23일 `이태석상`을 수상한 이재훈 씨(44)를 지난달 28일 서울 압구정동 소망교회 해외선교사 숙소에서 만났다. 키 167㎝의 아담한 체구에 안경을 끼고 있는 그는 장모와 함께 출국을 위한 짐을 챙기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걸려오는 수상 축하 전화를 받느라 진땀을 흘렸다.

"외교통상부 장관상은 대통령, 국무총리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상이지만 반향이 훨씬 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지난해 1월 우리에게 사랑과 희생 정신을 남기고 떠난 고(故) 이태석 신부의 울림이 너무 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이재훈 씨는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의 마다가스카르섬에서 6년 넘게 의료봉사활동을 펼친 공로를 인정받아 외교통상부가 제정한 `제1회 이태석상`을 수상했다. 이씨는 전주 덕진중과 동암고, 고려대 의대를 졸업했고 연세대 의대 대학원에 이어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장, 간, 대장, 갑상선, 소아외과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한 일반외과 전문의다. 지금은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파견 선교사로 서울교회, 밀알복지재단의 후원을 받으며 마다가스카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한국에 오면 가장 먹고 싶은 게 `짜장면`이라고 해서 근처 중국집으로 옮겨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마다가스카르의 의료 환경은 어떤가.

▶마다가스카르는 병원 하나 없는 마을이 2만여 곳에 달한다. 진료한 환자들 상당수가 의사를 처음 봤다고 한다. 대부분 지역이 도로조차 없다. 손에 칼과 가위, 실과 바늘만 들고 야외에서 수술이 이뤄지는 경우가 흔하다. 때로는 열대우림을 헤치고 들어가 환자를 돌봐야 하는 적도 많다. 이렇게 해서 치료해준 환자는 지금까지 1만여 명에 달한다. 현지인들이 "당신은 정말 정글 닥터야, 부시맨 닥터야"라고 하면서 지금은 `정글 닥터`와 `부시맨 닥터`가 별명이 됐다.

현재 마다가스카르 수도인 안타나나리보에 있는 국립병원 `이톨로시`에서 무료로 현지인들을 돕고 한 달에 한 번꼴로 일주일간 마다가스카르 오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무료 진료를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4~5명의 의료진이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했지만 최근 들어 현지 의사들의 참여가 늘어 많으면 10~20명이 휴가를 내서 함께 떠나기도 한다. 한 번 진료할 때 약 4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20여 건의 수술을 진행한다. 1년으로 치면 약 4000명의 환자를 돌보는 셈이다.

-어려운 점이 많을 듯한데.

▶처음에는 이렇게 아픈데 치료를 안 받고 사는 이유를 의료시설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문화적 요인이 숨어 있었다. 마다가스카르 원주민들은 질병을 조상의 저주나 관습을 지키지 못해 벌을 받은 것으로 믿는다. 이 때문에 몸이 아프면 저주를 풀기 위해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한다.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마을을 찾아가면 처음에는 전통적인 관습대로 대대적인 환영을 한다. 수백 년을 살면서 해적, 유럽 국가의 침입을 받으며 외지인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어 일단 환영해준다.

그러나 "치료하러 왔다"고 하면 의료진을 무당으로 본다. 의약품을 처방해주면 사람들이 무당의 부적처럼 목이 아프면 목에 걸고, 배가 아프면 배에 걸고 다닌다. 그만큼 약을 어떻게 먹는지조차 개념이 없는 것이다.

약을 먹어본 사람들은 부적과 다르다는 점을 곧바로 깨닫는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동안 약을 써보지 않아 약효가 금방 나타난다. 의약품의 효능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의료진이 모시는 신이 무당의 신보다 더 세다고 믿고 따른다. 의료봉사활동을 하고도 현지인들과 괴리감을 느꼈다면 원주민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소통의 문제라고 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는.

▶숱하게 많다. 굳이 꼽자면 눈이 튀어나와 20년 동안 눈을 감아본 적이 없는 환자를 들 수 있다. 2009년 들판에서 수술을 했다. 수술 후 상태가 호전돼 현재 잘 살고 있다. 또 다른 환자는 일주일 전부터 배가 아프다며 쇼크 상태로 병원을 찾아왔다. 응급 환자여서 헬리콥터로 데리고 왔는데, 검사해보니 자궁외 임신이었다. 조금만 늦었으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여자 언청이 환자들도 치료해주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감동한다. 아프리카에서는 언청이를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며 낙인을 찍어 시집 가기 힘들다. 시집을 못 가면 아이를 못 낳는데 아프리카에서는 애를 낳지 못하면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다. 수년 동안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알게 된 마을 추장들이 이제 `내 아들` 또는 `내 가족`이라며 반갑게 맞아줄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

-외국 비정부기구(NGO) 단체들도 크게 감동한다는데….

▶마다가스카르에는 캐나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NGO들이 많이 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헬리콥터를 활용하는 등 고비용을 지불하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있다. NGO단체 중 경비행기를 소유한 `MAF`와 헬리콥터를 소유한 `헬리미션(Helimission)`은 우리 의료봉사팀 3명이 10박11일 동안 1300~1400명의 환자를 진료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더라. 이들은 특히 수술을 70~80건 하고 구충약을 수천 명에게 나눠줬다는 얘기를 듣더니 업무 효율을 위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나섰다. MAF는 편도 이용에 2000유로쯤 하는 경비행기를 1년에 열두 번, 한 달에 한 번꼴로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어떻게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게 됐나.

▶어린 시절부터 아프리카에서 의료선교사로 활동하는 게 꿈이었다. 부모님에게 처음 용돈을 받은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장 먼저 성경책을 샀다. 성경책을 일독하면서 사도행전 16장 31절에 나온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구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러다가 중학교 1학년 때 아프리카 의료선교를 결심했다. 집 안에서 홀로 개신교 신자였던 내가 온 가족이 불교 신자였던 친구와 누가 먼저 가족을 교회로 이끄는지 내기를 했다. 그 결과 친구가 이겼다.

가족이 먼저 교회에 나오지 못한 것은 믿음이 부족했다고 생각하고 그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아프리카 의료선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대학교도 의대로 진학했고 전공 과목도 환자를 가장 많이 효과적으로 돌볼 수 있는 외과를 선택했다.

외과는 한 분야만을 전문화하지 않고 몇 분야를 골고루 섭렵했다. 대학원도 선교활동에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은 연세대로 옮겨 진학했다. 대학원 졸업 후 레지던트와 트레이닝도 세브란스병원에서 받았다.

아프리카는 2001년 처음으로 갔다. 세브란스병원 은사 중 `국제이웃사랑회(Good neighbor international)`라는 NGO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이 있었는데, 이분에게 "제 꿈이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소개하고 르완다를 가게 된 것이다. 당시는 봉사활동보다 아프리카 의료 상황을 정확히 살펴보기 위해 갔다.

아프리카를 다녀온 후 확실하게 마음을 굳히고 2003~2005년 영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쳤다. 그리고 마다가스카르 정부의 요청으로 2005년부터 이톨로시 국립병원에서 외과의사로 근무하며 의료봉사활동에 본격 나섰다.

-앞으로 봉사활동 계획은.

▶이번에 받은 상금(150만원)은 눈 수술을 하는 환자를 위해 쓸 예정이다. 또 혀가 튀어나온 환자를 치료하는 데 일부 지원할 생각이다. 이번 시상식 때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주기로 약속한 `이동식 병원(Mobile Hospital)`에 대한 기대가 크다. 이동식 병원은 버스나 컨테이너 안에 수술방, X선ㆍCTㆍMRI와 같은 진료 및 진단장비를 갖추고 이동하며 진료를 할 수 있어 국위 선양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같이 봉사활동을 진행할 동료가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간호사 선생님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고장이 잘 나지 않는 튼튼한 차량이 있으면 좋겠다. 꿈은 이동 진료를 하는 의사가 많아져 무의촌 지역에 의료 혜택을 많이 주고 현지인 의사 100명을 길러내는 것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어떤 나라인가.

▶남한의 6배 크기(58만7041㎢)에 인구 2192만명이 살고 있다. 지하자원과 관광자원이 풍부해 국민이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오히려 `기적`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물도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달리 상대적으로 풍족하다.

지난해 말 현재 1인당 국민소득(명목)은 320달러로 최빈국 중 하나로 손꼽힌다. 전체 인구의 85%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생활하고 있다. 1960년 6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교육과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투자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의료 수준 역시 매우 낮다. 전체 인구 중 400만~600만명이 의료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태석賞은
다큐 `울지마 톤즈`주인공 뜻 기려 제3세계 의료 봉사자에게 수여

이태석 신부가 떠난 지 2년이 지났지만 `이태석상(賞)` 제정으로 그가 남긴 진한 감동이 또다시 전해지고 있다. 이태석상은 외교통상부가 2001~2008년 남부 수단 오지인 톤즈 마을 빈민을 대상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지난해 1월 영면한 고(故) 이태석 신부 봉사정신을 기리고자 지난 8월 제정했다. 그리고 제1회 수상자로 아프리카 남동쪽 인도양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재훈 씨를 선정해 지난달 23일 시상했다.

외교통상부는 "이태석상을 계기로 우리 국민이 국제사회 공동과제인 빈곤과 질병 문제 해결을 위해 봉사활동을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 이태석 신부는 1987년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 장래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다. 군복무를 마친 뒤 1991년 살레시오회에 입회했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뒤 2001년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는 8년 동안 수단 톤즈에 머물며 병원을 짓고 하루에 주민 200~300명을 진료했다. 한밤중이나 새벽에 환자들이 찾아와도 한 번도 짜증을 내지 않고 희생적으로 치료해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렸다. 그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한센병을 비롯한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을 적극 보살폈다. 신부는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왔다가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고 1년여 동안 암 투병생활을 했다. 투병 중에도 병원이 아닌 서울 대림동 공동체에서 머물며 젊은이들을 위한 곡을 작곡하는 등 삶을 향한 의지를 접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지난해 1월 14일 새벽 5시 선종했다. 이태석 신부는 2009년 아프리카 톤즈에서 지낸 일상을 집필한 에세이집 `아프리카의 햇살은 아직도 슬프다`는 책을 냈다. 지난해 그의 인생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영화화한 `울지마 톤즈(Don`t cry for me sudan)`는 우리 사회 각계각층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He is…

△1967년 전주 출생 △전주 덕진중, 동암고 졸업 △고려대 의과대(1986~1993년) △연세대 의과대 전문의(2001년) △연세대 의과대 외과학 석사(2003년)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의료사역팀(2003년) △영국 신학대학 유학(2003~2005년) △마다가스카르 이톨로시 병원 외과 전임의(2006년~현재)

[이병문 의료전문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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